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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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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9분

3. 가르침의 수준들이란 무엇인가?

1 하느님의 교사들에게 가르침의 수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작할 때는 각각의 교수·학습 상황에 서로 다른 관계가 수반된다. 비록 궁극적인 목표는 항상 똑같지만 말이다. 그 목표는 바로, 그 관계를 두 사람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을 죄 없다고 볼 수 있는 거룩한 관계로 만드는 것이다. 하느님의 교사가 배움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그가 가르칠 수 없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실용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가 모든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그를 찾아낼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 계획에는 각각의 하느님의 교사를 위해 이루어질 아주 구체적인 만남들이 포함되어 있다. 구원에 우연이란 없다. 만나야 할 자들은 만날 것이다. 그들에게는 함께 거룩한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2 가르침의 가장 단순한 수준은 상당히 피상적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주 우연한 만남처럼 보이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겉보기에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나는 경우, 아이가 앞을 보지 않고 가다가 "우발적으로" 어떤 어른과 부딪치는 경우, 어쩌다 집으로 같이 걸어가는 두 학생 등. 이런 예들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다. 각각의 만남에는 교수·학습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서로 모르는 듯한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에게 미소를 지어줄 것이다. 어쩌면 그 어른은 자신과 부딪친 아이를 꾸짖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두 학생은 친구가 될 것이다. 가장 우연한 만남의 수준에서조차, 두 사람이 단 한 순간이나마 분리된 이해관계를 보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 그 순간으로 충분할 것이다. 구원은 이미 왔다.

3 보편적인 수업을 가르치는 데서 수준들이라는 개념은 실제로 시간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개념이지만, 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나의 환상이 다른 하나의 환상을 가능하게 한다. 시간 안에서, 하느님의 교사는 단 한 번의 결심으로 세상에 대한 마음을 바꾸기 시작하여, 그 새로운 방향을 가르침에 따라 그것에 대해 점점 더 배우는 듯이 보인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환상에 대해서는 이미 다뤘지만, 가르침의 수준들이라는 환상은 무언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수준들이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최선의 길은 아마도 그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리라: 교수·학습 상황의 모든 수준은 하느님의 속죄 계획의 일부인데, 하느님 뜻의 반영인 그 계획에는 어떤 수준도 있을 수 없다. 구원은 항상 준비되어 있고, 항상 있다. 하느님의 교사들은 다른 수준들에서 일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똑같다.

4 각각의 교수·학습 상황은, 관련된 각 사람이 그 당시에 상대방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최대치를 배울 것이라는 의미에서, 최적의 상황이다. 오로지 이런 의미에서만 우리는 가르침의 수준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이 용어를 이런 식으로 사용할 때, 가르침의 두 번째 수준은 보다 지속되는 관계로서, 여기서 두 사람은 한동안 상당히 강도 높은 교수·학습 상황에 들어가고, 그런 다음 분리되는 듯이 보인다. 첫 번째 수준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만남은 우발적이지 않으며, 관계의 끝처럼 보이는 것도 진짜 끝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각자는 그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배웠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 다시 만날 것이다. 거룩해지는 것은 모든 관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않으신다.

5 가르침의 세 번째 수준은 일단 형성되면 평생 지속되는 관계에서 일어난다. 이런 관계는 서로에게 무한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선택된 학습 파트너가 주어지는 교수·학습 상황이다. 이런 관계는 대체로 극소수다. 왜냐하면 이런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 안에 있는 자들이 실제로 교수·학습의 균형이 완벽한 단계에 동시에 도달했음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이 사실을 반드시 인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그들은 대체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들은 심지어 한동안, 어쩌면 평생 동안 서로에게 상당히 적대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것을 배우겠다고 결심한다면, 그들이 배울 수 있도록 완벽한 레슨이 주어진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그 레슨을 배우겠다고 결심한다면, 그들은 주저하거나 심지어 실패하는 듯이 보이는 교사들의 구원자가 된다. 하느님의 교사라면 그 누구도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찾는 데 실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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