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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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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5분

4. 하느님의 교사들의 특성은 무엇인가?

1 하느님의 교사들은 표면적인 특성에 있어서 전혀 닮지 않았다. 그들은 몸의 눈이 보기에 전혀 닮지 않았으며, 출신 성분도 굉장히 다르고, 세상에 대한 경험도 아주 다양하며, 피상적인 "성격"도 뚜렷이 구별된다. 그리고 하느님의 교사로서 기능하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그들은 그들을 하느님의 교사로 확고히 세워줄 보다 심오한 특성들을 아직 습득하지 못한 상태다. 하느님은 당신의 교사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신다. 그들은 하느님의 속죄 계획에서 특별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선물의 특별성은 물론 일시적일 뿐이며, 시간 밖으로 데려다주는 수단으로서 시간 안에 놓여있다. 교수·학습 상황은 거룩한 관계에 맞춰 조정되는데, 그 관계에서 태어난 이러한 특별한 선물은 배움에서 상급 수준에 도달한 모든 교사의 특성이 된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모두 똑같다.

2 하느님의 아들들 가운데 있는 모든 차이는 일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안에서 하느님의 상급 교사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신뢰

3 하느님의 상급 교사들이 자신의 기능을 이행하는 능력은 신뢰라는 토대에 놓여있다. 지각은 배움의 결과다. 사실 원인과 결과는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으므로, 지각은 곧 배움이다. 하느님의 교사들은 세상을 신뢰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은 세상이 지어낸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기 때문이다. 세상은 권능의 지배를 받는다. 그 권능은 그에게서 난 것은 아니지만, 그의 내면에 있다. 바로 이 권능이 모든 것을 안전하게 지켜준다. 바로 이 권능을 통해 하느님의 교사들은 용서받은 세상을 바라본다.

4 그가 일단 이런 권능을 경험하면, 자신의 보잘것없는 힘을 다시 신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수리의 막강한 힘이 주어져 있거늘, 누가 참새의 변변찮은 날개로 날려 하겠는가? 하느님의 선물이 앞에 놓여있거늘, 누가 에고의 초라한 공물을 믿으려 하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전환을 하게 하는가?

5 첫 번째로, 하느님의 교사는 소위 "무효화의 기간"이라 부를 수 있는 시기를 거쳐야 한다. 이것은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지만, 보통 그렇게 경험된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빼앗기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그것의 가치 없음이 인식되는 것에 불과하지만, 처음에는 그렇다는 것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지각자가 사물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지 않는 한, 그것의 가치 없음을 어떻게 지각할 수 있겠는가? 그는 아직 그러한 전환을 완전히 내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따라서 그 계획은 때로 외적인 상황처럼 보이는 것에서의 변화를 요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항상 도움이 된다. 하느님의 교사가 그만큼 배웠을 때, 그는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간다.

6 다음으로, 하느님의 교사는 "가려내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 이것은 언제나 다소 힘들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변화가 항상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배웠기에, 이제 모든 것을 그것들이 그러한 도움됨을 증진하는지 아니면 방해하는지에 근거하여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에 가치 있게 여긴 것 중에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상당수가, 자신이 배운 것을 새로 발생하는 상황에 전이하는 능력을 방해할 뿐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는 실제로는 가치 없는 것들을 가치 있게 여겼고, 그런 까닭에 상실과 희생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레슨을 일반화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물, 모든 사건, 모든 뜻밖의 조우, 그리고 모든 상황이 도움이 된다는 점을 이해하려면 아주 많이 배워야 한다. 이 환상의 세상에서 그것들에 어느 정도라도 실재성이 부여되어야 한다면, 그것들이 도움이 되는 정도까지만 그래야 한다. "가치"라는 단어는 다른 어떤 것에도 적용될 수 없다.

7 하느님의 교사들이 거쳐야 할 세 번째 단계는 "포기의 기간"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을 바람직한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이 단계는 엄청난 갈등을 발생시킬 것이다. 극소수의 하느님의 교사만이 이런 어려움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하지만 가치 없는 것에서 가치 있는 것을 가려내는 것은, 그다음에 오는 이 명백한 단계를 밟지 않는 한 무의미하다. 두 번째 단계가 완성될 때까지,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므로 이 겹치는 기간은 하느님의 교사가 진리를 위해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희생하라는 요구를 받는 것처럼 느끼는 기간이기 쉽다. 그는 아직 그런 요구가 얼마나 말도 안 되게 불가능한지 깨닫지 못했다. 그는 가치 없는 것을 실제로 포기할 때만 이것을 배울 수 있다. 이것을 통해, 그는 큰 슬픔을 예상했던 곳에서 그 대신에 홀가분한 행복 하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선물 하나가 주어져 있음을 발견한다.

8 이제 "자리잡는 기간"이 온다. 이것은 하느님의 교사가 적당한 평화 속에서 잠시 안식하는 조용한 시간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배움을 통합한다. 이제 그는 그동안 배운 것의 전이 가치를 깨닫기 시작한다. 그것의 잠재력은 문자 그대로 깜짝 놀랄 만하며, 이제 하느님의 교사는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길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지점에 있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은 포기하고, 원하는 것은 간직하라." 명백한 것은 얼마나 단순한지! 그리고 얼마나 행하기 쉬운지! 하느님의 교사에게는 이렇게 한숨 돌리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는 아직 스스로 생각하는 것만큼 멀리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계속 나아갈 준비가 되었을 때, 그는 막강한 동반자들과 함께 간다. 이제 그는 잠시 안식하면서, 계속 나아가기 전에 그들을 불러 모은다. 여기서부터 그는 홀로 가지 않을 것이다.

9 다음 단계는 정녕 "동요의 기간"이다. 이제 하느님의 교사는 자신이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는지 실제로 몰랐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제까지 그가 실제로 배운 것이라고는, 자신이 가치 없는 것은 원하지 않았고 가치 있는 것은 정녕 원했다는 점이 전부다. 하지만 그 차이를 배우는 데 있어서 스스로 가려내는 작업은 의미가 없었다. 그의 사고체계에서 너무나 중요한 희생이라는 아이디어는 그로 하여금 판단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용의를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 용의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길고 긴 시간 동안 도달하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그는 모든 상황에서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그가 정말로 원하는 것만을 요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가는 각각의 단계가 아주 철저하게 강화되지 않았다면, 이것은 정녕 어려울 것이다!

10 그리고 마침내 "성취의 기간"이 온다. 바로 이 기간에 배움이 통합된다. 이제 전에는 그저 그림자로만 보였던 것이 평온한 때뿐만 아니라 모든 "위기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확고한 성취물이 된다. 사실 평온함은 그러한 성취물, 즉 정직한 배움, 사고의 일관성, 충분한 전이의 결과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의 단계다. 바로 여기에 천국의 상태가 충만하게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천국으로 가는 길은 탁 트이고 평탄한 길이다. 사실, 천국은 여기에 있다. 마음의 평화가 이미 완전하다면 그 누가 어딘들 "가려" 하겠는가? 그리고 그 누가 평온함을 무언가 더 바람직한 것으로 바꾸려 하겠는가? 과연 무엇이 이보다 더 바람직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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