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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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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3분

• 정직함

11 하느님의 교사들의 다른 모든 특성은 신뢰에 근거한다. 일단 신뢰를 성취하면, 다른 것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신뢰하는 자만이 정직할 수 있다. 오로지 신뢰하는 자만이 정직함의 가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직함은 네가 하는 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 용어는 실제로 일관성을 의미한다. 네가 하는 말 중에 너의 생각이나 행동과 모순되는 것은 전혀 없다. 다른 생각과 상반되는 생각도 전혀 없다. 네가 하는 말과 어긋나는 행위도 전혀 없다. 다른 말과 일치하지 않는 말도 전혀 없다. 이러한 자가 참으로 정직한 자다. 그 어떤 수준에서도, 그는 자기 자신과 갈등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갈등할 수 없다.

12 하느님의 상급 교사들이 경험하는 마음의 평화는 주로 그들의 완벽한 정직함 덕분이다. 속이려는 소망만이 전쟁으로 이어진다. 자기 자신과 일치하는 자는 갈등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갈등은 자기기만의 불가피한 결과며, 자기기만은 정직하지 않음이다. 하느님의 교사에게 시험이란 없다. 시험은 의심을 함축하는데, 하느님의 교사가 확고하게 근거하고 있는 신뢰는 의심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는 성공할 수만 있을 뿐이다. 모든 것에서 그런 것처럼, 그는 이 점에 있어서도 정직하다. 그가 오로지 성공할 수만 있는 이유는, 그는 결코 자신의 뜻을 홀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온 인류를 위해, 온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위해, 겉모습 너머의 변하지 않고 변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과 그의 창조주를 위해 선택한다. 그가 어떻게 성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하듯이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면서, 완벽한 정직함 속에서 선택한다.

• 관용

13 하느님의 교사들은 판단하지 않는다. 판단하는 것은 정직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판단하는 것은 네가 갖지도 않은 지위를 가진 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기만 없는 판단은 불가능하다. 판단은 네가 네 형제들을 잘못 보아 속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너 자신을 잘못 보아 속지 않았을 수 있겠는가? 판단은 신뢰의 결핍을 함축하는데, 신뢰는 여전히 하느님 교사의 전체 사고체계의 기반으로 남아있다. 신뢰가 상실되면, 그의 모든 배움이 사라진다. 판단이 없다면 모든 것을 동등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과연 누가 그와 달리 판단할 수 있겠는가? 판단이 없다면 모든 이가 형제들이다. 왜냐하면, 과연 누가 따로 떨어져 있겠는가? 판단은 정직함을 파괴하고 신뢰를 산산조각낸다. 그 어떤 하느님의 교사도 판단하면서 여전히 배우기를 바랄 수는 없다.

• 온유함

14 하느님의 교사들에게 해침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해칠 수도, 해침을 당할 수도 없다. 해침은 판단의 결과다. 해침은 정직하지 않은 생각에 뒤따르는 정직하지 않은 행위다. 그것은 어떤 형제에 대한, 따라서 자기 자신에 대한 유죄 판결이다. 그것은 평화를 끝장내고 배움을 부정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커리큘럼이 부재하며, 정신 이상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음을 입증한다. 하느님의 교사라면 누구나 해치려는 경향은 자신의 기능을 완전히 망각하게 만든다는 점을 훈련 과정에서 반드시 배워야 하며, 그것도 상당히 일찌감치 배워야 한다. 그것은 그를 혼란스럽고,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의심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성령의 레슨을 배우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해침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실제로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은 자들 외에는 그 누구도 하느님의 교사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해침으로부터는 어떤 이득도 볼 수 없다.

15 그러므로 하느님의 교사들은 전적으로 온유하다. 그들에게는 온유함의 강함이 필요하다. 구원의 기능은 온유함 속에서 쉬워지기 때문이다. 해치려는 자에게, 온유함은 불가능하다. 해침에서 어떤 의미도 보지 않는 자에게, 온유함은 그저 자연스러울 뿐이다. 제정신인 자가 과연 이것 외에 어떤 선택이 의미 있다고 보겠는가? 그 누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지각하면서 지옥을 선택하겠는가? 또한 그 누가 한결같고 모든 것을 품어 안으며 한계가 없는 온유함의 강함 대신에, 해침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약함을 선택하겠는가? 하느님의 교사들의 힘은 그들의 온유함에 놓여있다. 그들은 자신의 악한 생각이 하느님의 아들에게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의 창조주에게서 나온 것도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근원이신 분과 결합했다. 따라서 언제나 그분 자신의 것이었던 그들의 뜻은 자유로이 그 자체가 된다.

• 기쁨

16 기쁨은 온유함의 불가피한 결과다. 온유함은 이제 두려움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니 과연 무엇이 와서 기쁨을 방해할 수 있겠는가? 온유함의 활짝 벌린 두 손은 항상 가득차 있다. 온유한 자에게는 고통이 없다. 그는 괴로워할 수 없다. 그가 왜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는 자신이 사랑받고 있으며 안전하다는 것을 확신한다. 공격에 슬픔이 뒤따르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온유함에는 기쁨이 따라온다. 하느님의 교사들은 하느님을 신뢰한다. 그들은 그분의 교사가 앞에 걸어가면서, 자신에게 어떠한 해침도 일어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확신한다. 하느님의 음성이 모든 일에서 그분의 교사들을 인도하므로, 그들은 그 교사의 선물을 들고 그의 길을 따라간다. 기쁨은 그들이 부르는 감사의 노래다. 그리스도 또한 감사하며 그들을 내려다본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것만큼이나 그리스도 또한 그들을 크게 필요로 한다. 구원이라는 목적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기쁜 일인지!

• 무방어

17 하느님의 교사들은 단순해지는 법을 배웠다. 그들에게는 진리에 맞서 방어할 필요가 있는 어떤 꿈도 없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들의 기쁨은 누가 자신을 창조하셨는지 이해하는 데서 온다. 하느님의 창조물이 과연 방어를 필요로 하겠는가? 방어수단이란 단지 미친 환상의 어리석은 수호자일 뿐임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는, 아무도 하느님의 상급 교사가 될 수 없다. 꿈이 더 괴상해질수록 꿈의 방어수단은 점점 더 맹렬하고 강력해 보인다. 하지만 하느님의 교사가 마침내 그 방어수단을 간과하겠다고 동의할 때, 그는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음을 발견한다. 처음에 그는 자신이 속임수에서 천천히 벗어나도록 허용하지만, 신뢰가 커지면서 점점 더 빨리 배운다. 방어수단을 내려놓을 때 오는 것은 위험이 아니다. 그것은 안전이다. 그것은 평화다. 그것은 기쁨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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