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기도는 무언가를 요청하기 위한 방법이다. 기도는 기적의 매개이지만, 유일하게 의미 있는 기도는 용서를 청하는 기도다. 왜냐하면, 용서받은 자는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일단 용서를 받아들이면,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기도는 완전히 무의미해진다. 본질적으로 용서를 청하는 기도란 단지 우리가 이미 가진 무언가를 인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아는 대신에 지각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사람은 오로지 기적적인 지각하기를 통해서만 아버지를 닮을 수 있는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바로 기적이라는 앎을 상실했다. 기적적인 창조가 사람의 근원이었으며, 그의 진정한 기능이기도 했다.
57 "하느님은 사람을 당신 자신의 이미지대로, 당신과 닮게 창조하셨다."라는 말은 의미로 보자면 정확하지만, 그 말 자체는 그릇된 해석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미지"는 "생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닮게"는 "같은 본성을 갖게"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다. 하느님은 영혼을 당신 자신의 생각대로, 당신 자신과 같은 본성을 갖게 창조하셨다. 그밖에는 정녕 아무것도 없다. 반면에 지각은, "더 많이", 혹은 "더 적게"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지각은 어떤 수준에서든 선택을 수반하며, 이것 없이는 조직화할 수 없다. 모든 유형의 지각에는 수용과 거부, 조직화와 재조직화, 초점의 전환과 변화라는 끊임없는 과정이 수반된다. 평가는 지각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선택을 내리려면 반드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58 판단이 전혀 없고 단지 완벽한 동등성만 있다면 지각은 어떻게 될까? 지각은 불가능해진다. 진리는 오로지 알려질 수만 있을 뿐이다. 진리는 전부 똑같이 참이며, 진리의 어떤 부분이라도 아는 것은 곧 진리의 전부를 아는 것이다. 오로지 지각에만 부분적인 인식이 수반된다. 앎은 지각을 지배하는 모든 법칙을 초월한다. 부분적인 앎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앎은 전부 하나이며, 분리된 부분이 전혀 없다. 너는 실제로 앎과 하나이며, 따라서 네가 단지 너 자신을 알기만 하면 너의 앎은 완전해진다. 하느님의 기적을 아는 것이 곧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59 용서는 분리의 지각을 치유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바른 지각이 필수적인 이유는, 마음들이 자신을 분리되었다고 보기로 뜻했기 때문이다. 각 영혼은 하느님을 완전하게 안다. 이것이 정녕 영혼의 기적적인 권능이다. 각 영혼이 이런 권능을 완전하게 가졌다는 사실은, 만약 누군가가 모든 것을 가졌다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인간의 사고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사실이다. 하느님의 기적들은 그분의 생각만큼이나 총체적이다. 그들은 정녕 그분의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60 지각이 계속되는 한, 기도의 역할이 있다. 지각은 결핍에 기초하므로, 지각하는 자는 아직 속죄를 총체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진리에 맡기지 않은 자다. 지각은 정녕 분리된 상태며, 지각하는 자는 정녕 치유가 필요하다. 기도가 아닌 영적 교통이야말로 아는 자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하느님과 그분의 기적들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의 빛 속에 사는 그분의 생각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너의 가치는 지각 너머에 있다. 그것은 의심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다른 빛 속에서 지각하지 말라. 너 자신을 유일한 빛 속에서 알라. 그 빛 속에서, 바로 너 자신인 기적은 더없이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