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모든 것은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여기에는 어떤 예외도 없다. 예외는 오로지 에고의 판단 속에만 존재한다. 에고는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 분개한다. 통제는 에고가 의식에 들어오도록 허용하는 것 중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며, 에고가 가장 철저히 지키는 요소다. 이것은 균형 잡힌 마음이 유지되는 방법이 아니다. 에고의 통제는 무의식적이다. 에고는 자신의 주된 동기는 무의식에 담아두고, 분별 있는 판단보다는 통제를 앞세움으로써 한층 더 균형을 잃는다. 에고를 발생시켰고 에고가 섬기는 사고체계에 따르자면, 에고는 이렇게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제정신인 판단은 에고에 반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에고는 자기 보존을 위해 그것을 지워버릴 것이다.
70 에고의 불균형 상태의 주된 근원은, 에고가 하느님에게서 오는 충동과 몸에서 오는 충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런 혼동을 일으키는 모든 사고체계는 제정신이 아님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런 정신 나간 상태는 에고에게 필수적이다. 에고는 어떤 것이 자신에게 위협적인지 아닌지의 측면에서만 판단한다. 어떤 의미에서 에고가 하느님이라는 아이디어를 두려워하는 것은 최소한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이 아이디어는 에고를 물리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높은 근원에서 오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에고의 관점에서는 얼마간 말이 된다. 그러나 에고가 그렇게도 가까이 동일시하는 몸에 대한 두려움은 더 노골적으로 말이 안 된다.
71 몸은 에고 자신이 선택한 에고의 집이다. 몸은 에고가 안전함을 느끼는 유일한 동일시 대상이다. 몸의 취약함은 네가 하느님에게서 나온 존재일 수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에고 자신의 최고 논거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고가 열렬히 후원하는 믿음이다. 하지만 에고는 몸을 증오한다. 에고는 몸이 자신의 집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가 바로 마음이 참으로 어리둥절해지는 지점이다. 마음은 에고에게서 마음이 실제로 몸의 일부이고 몸은 마음의 보호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또한 몸이 마음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통고받는다. 물론 이 말은 정확할 뿐만 아니라 아주 명백하다.
72 따라서 마음은 "내가 어디로 가야 보호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고, 에고는 이에 대해 "나에게 의지해."라고 답한다. 지당한 이유가 있는 마음은 에고에게, "너 자신이 직접 몸과 동일하다고 주장했으니, 보호받으려고 너에게 의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일깨워 준다. 에고는 이 질문에 대한 진정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질문에는 정녕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고는 전형적인 해결책은 갖고 있다. 에고는 그 질문을 마음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지워버린다. 그 질문은 일단 무의식화되면 불안감을 발생시킬 수 있으며, 실제로 불안감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그 질문은 제기될 수 없으므로, 답해질 수 없다. 반드시 제기되어야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보호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심지어 제정신이 아닌 자도 이 질문을 무의식중에 제기하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제기하려면 진짜 제정신이 필요하다.
73 "구하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라는 성서의 말은, 네가 알아보지도 못할 어떤 것을 맹목적이고도 절망적으로 구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의미 있는 추구란 의식적으로 착수되고, 의식적으로 조직되며, 의식적으로 방향 설정되는 것이다. 목표는 뚜렷이 세워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나는 어느 정도 경험 있는 교사로서 배우는 것과 배우려고 소망하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너에게 일깨워 주고자 한다. 모든 학습자들은 배우려고 하는 내용이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믿을 때 가장 잘 배운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치들은 위계가 있으며, 네가 배우기를 원할 수도 있는 모든 것에 지속적인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74 사실 네가 배우기를 원하는 것 중에 많은 것은, 그 가치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선택된다. 에고는 영원한 것이라면 그 무엇에도 전념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것은 분명 하느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원성은 에고가 개발하려고 노력했지만 구조적으로 실패한 유일한 기능이다. 에고가 그러기를 원했다면 영원한 것을 만들 수도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너는 놀랄 수도 있다. 에고는 마음의 산물로서, 자신을 창조한 자의 권능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고가 정말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은, 영원한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만들겠다는 결정이다. 왜냐하면 그런 결정은(그런 결정으로부터는 그런 능력이 자연스럽게 개발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정확한 지각, 즉 명료한 상태를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대로 판단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에고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상태다.
75 이런 딜레마의 결과가 괴상하기는 하지만, 그 딜레마 자체만큼 괴상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에고는 다른 곳에서처럼 특징적으로 반응했다. 정신 질환은 항상 에고가 관련된 것으로서, 신뢰성의 문제라기보다는 타당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어떤 식으로든 진짜 질문을 다루는 모든 사안과 타협하듯이 영원성의 주제와도 타협한다. 에고는 별 관련 없는 질문들과 타협함으로써, 진짜 질문을 감춰서 마음 바깥에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질적이지 않은 일에 에고가 보이는 특징적인 분주함은 정확히 이런 목적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