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하느님의 의미가 왕국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곳이야말로 하느님이 당신의 의미를 두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 안에서 기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왕국 안에서 안식할 뿐이다. 너처럼 그것도 본래 왕국에 속하기 때문이다. 정녕 하느님의 의미인 네가 어떻게 자신을 왕국에 없다고 지각할 수 있겠는가? 너 자신이 너의 의미와 분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너 자신이 실제가 아니라고 경험하는 것뿐이다. 바로 이것이 에고가 제정신이 아닌 까닭이다. 에고는 네가 너의 정체가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것은 너무도 모순되므로, 명백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것은 네가 실제로 배울 수 없고, 따라서 실제로 가르칠 수 없는 레슨이다. 하지만 너는 항상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너는 분명 다른 무언가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비록 에고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27 그렇다면 에고는 항상 무효화되고 있으며, 너의 동기를 의심한다. 너의 마음은 에고에게 전적으로 충성할 수 없다. 마음은 본래 에고에게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고에게 "반역하는" 것은 실로 평화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니 에고의 "적"은 너의 친구다. 우리는 전에 에고의 친구는 너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에고는 자신이 전쟁 중에 있어서 동맹자가 필요하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전쟁 중에 있지 않은 너는 형제들을 찾아야 하고, 네가 보는 모든 이를 형제로 인식해야 한다. 오로지 동등한 자들만이 평화롭기 때문이다.
28 하느님의 동등한 아들들은 모든 것을 가졌으므로, 서로 경쟁할 수 없다. 하지만 형제들 가운데 누구라도 자신과 완벽하게 동등한 자가 아니라고 지각한다면, 경쟁이라는 아이디어가 이미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이 아이디어에 맞서 경계해 깨어있어야 할 필요성을 경시하지 말아야 한다. 너의 모든 갈등은 그 아이디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충하는 이해관계가 가능하다는 믿음이며, 따라서 너는 이미 불가능한 것을 참이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이 너 자신을 실제가 아니라고 지각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29 왕국 안에 있는 것은 단지 너의 모든 주의를 왕국에 기울이는 것이다. 네가 참이 아닌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고 믿는 한, 갈등을 너의 선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로 선택인가? 그렇게 보일 수는 있지만, 보이는 것과 실재는 도저히 같다고 할 수 없다. 왕국 자체인 너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실재가 네 것인 이유는, 네가 실재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왕국 안이 아닌 네 마음 안에서, 소유하기와 존재하기가 궁극적으로 일치되는 방법이다. 네 마음 안에 있는 제단이 유일한 실재다. 그 제단은 완벽한 생각의 반영이므로, 그 생각이 완벽하게 뚜렷하다. 그 제단은 오로지 형제들만 본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의 빛 안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30 하느님이 친히 너희 마음에 불을 지피셔서 당신의 빛으로 밝게 유지하신다. 그분의 빛이야말로 너희 마음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질문했을 때, 너희는 정녕 응답받았다. 그 답은 질문을 그저 무효화하는데, 실재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곧 무의미하게 질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립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이 결코 질문하지 않는 까닭이다. 성령의 유일한 기능은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을 무효화함으로써 확실성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확신하는 자는 지극히 평온하다. 그들은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의문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그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를 지극한 평안 가운데 머물게 한다. 이것은 곧 자신의 정체를 아는 자가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