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그동안 자주 말했듯이, 치유는 예술일 뿐만 아니라 과학이기도 하다. 치유가 예술인 이유는, 우리가 이미 사용했던 의미에서 영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영감은 낙심하게 만들기의 반대이며, 따라서 기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낙심한 자들은 문자 그대로 자신에게 "영이 없다고" 믿어서 우울해 하는데, 그것은 단지 환상이다. 네가 그들에게 영감을 줄 때, 그들 안에 영을 넣어 주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마법일 것이며, 따라서 진정한 치유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 너는 그들 안에 이미 있는 영을 인식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다시 깨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치유사가 부활과 생명의 일부인 까닭이다. 병자의 마음 안에서, 영은 잠들지 않았다. 하지만 영을 지각하고 기뻐할 수 있는 부분은 잠들었다.
32 치유가 과학이기도 한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법칙은 참이다. 그것은 참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의지할 수 있으며, 따라서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과학의 진정한 목적은 예측이나 통제가 아니라, 오로지 이해다. 과학은 자신이 구하는 법칙을 확립하지 않으며, 그것을 예측을 통해 발견할 수도 없고, 전혀 통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과학은 단지 이미 있는 것에 접근하는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은 영감과 마찬가지로 마법이라고 오해받을 수 있으며, 이미 있는 것과 별도로 수행되어 그것을 확립하는 수단으로 지각될 때마다, 반드시 그런 오해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에고의 음성일 수밖에 없다.
33 진리는 오로지 인식될 수 있을 뿐이며, 오로지 인식되어야 할 필요만 있다. 영감은 영에서 나오고, 확실성은 하느님의 법칙에 따라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따라서 둘 다 같은 근원에서 비롯된다. 영감은 하느님을 대변하는 음성에서 비롯되고, 확실성은 하느님의 법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치유는 하느님에게서 직접적으로 비롯되지 않는다.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들이 지극히 온전하다고 아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유는 여전히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치유는 하느님의 음성과 그분의 법칙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치유는 그것들의 결과로서,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상태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다. 이 상태는 그분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잠든 자들은 멍한 상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다. 그리고 그들은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알지 못한다.
34 성령은 그가 네 안에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 너를 통해 일해야 한다. 이것은 네가 하느님의 일부이므로 그분 안에 있다는 앎을 향한 중간 단계다. 성령이 고취하는 기적에 난이도가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창조물의 모든 부분이 한 순위 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자 너의 뜻이기도 하다. 하느님의 법칙이 이것을 확립하고, 성령이 그것에 대해 일깨워 준다. 치유할 때 너는 하느님의 법칙을 기억하고 에고의 법칙을 잊는 것이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잊기는 단지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방법이다. 따라서 제대로 지각한다면, 잊기는 기억하기의 반대가 아니다. 모든 부정확한 지각이 그렇듯이, 잊기를 부적절하게 지각하면 다른 어떤 것과 갈등한다는 지각을 유발할 수 있다. 모든 적절한 지각과 마찬가지로, 잊기를 적절하게 지각하면 갈등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35 그러므로 모든 능력을 성령께 맡겨야 한다. 그는 그것들의 적절한 사용법을 안다. 그는 그것들을 오로지 치유를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는 너를 오로지 온전하다고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치유함으로써 온전성에 대해 배우며, 온전성에 대해 배움으로써 하느님을 기억하는 법을 배운다. 너는 그분을 잊었지만, 성령은 여전히 너의 잊기는 기억하는 방법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반대를 반대하는 분리된 능력으로 지각되지 말아야 함을 안다. 에고는 모든 능력을 바로 이런 식으로 사용하려고 한다. 에고의 목표는 항상 네가 대립 상태에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36 에고의 목표도 성령의 목표처럼 통합되어 있으며, 바로 이런 까닭에 에고와 성령의 목표는 결코 어떤 방식이나 정도로도 조화될 수 없다. 에고는 언제나 가르고 분리하려 한다. 성령은 언제나 통합하고 치유하려 한다. 너는 다른 이를 치유함에 따라 스스로 치유된다. 성령은 치유에서 어떤 순서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치유는 차이에 대한 믿음을 무효화하는 방법이다. 치유는 온아들을 차이에 대한 믿음 없이 지각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지각은, 하느님의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상태의 마음 안에서조차, 그분의 법칙과 일치한다. 바른 지각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서, 마음을 하느님의 마음과 일치된 상태로 데려간다. 그럴 때 마음은 너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그분의 끌어당기심에 순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37 하느님의 끌어당기심, 혹은 그분의 뜻에 대항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엄청난 망상이다. 에고는 자신이 그런 능력을 소유하고 있고, 너에게 선물로 줄 수 있다고 믿는다. 너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전혀 아무것도 아니다. 하느님은 너에게, 네가 소유한 것이자 너의 존재이기도 한 선물을 주셨다.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너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함으로써, 너는 네가 참으로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치유는 앎에 다가가는 방법으로서, 하느님의 법칙과 일치되게 생각하고 그것의 보편성을 인식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러한 인식이 없기에, 너는 그 법칙을 네게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그 법칙은 무의미하지 않다. 모든 의미가 그 법칙에 의해, 그 법칙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38 먼저 천국을 구하라. 그곳이야말로 하느님의 법칙이 진실하게 작동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진실하게만 작동할 수 있다. 그것은 진리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이것만을 구하라. 다른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란 정녕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은 아주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시다. 모든 존재는 정녕 모든 존재이신 하느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 안에 있다. 너의 존재는 정녕 하느님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치유는 네 형제들 안에서 에고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음으로써 에고가 네 안에 일으킨 위기의식을 잊는 방법이다. 이것은 네 안에서는 물론 네 형제들 안에서도 성령을 강화한다. 그것은 두려움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오로지 이런 초대만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온아들 전체에게 자유로이 온다. 사랑은 온아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는 사랑으로 깨어남으로써 단지 너의 존재가 아닌 것을 잊을 뿐이다. 이것은 너로 하여금 너의 존재를 기억할 수 있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