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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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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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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치유와 마음의 불변성

39 몸은 능력을 개발하기 위한 틀에 불과하다. 따라서 몸은 잠재력을 개발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것은 그 잠재력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지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것은 하나의 결정이다. 이 문제에 대한 에고의 결정은 그 결과가 너무도 뻔하므로 여기서 더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몸을 오로지 소통을 위해서만 사용하겠다는 성령의 결정은 치유와 굉장히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으므로,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치유되지 않은 치유사는 자신의 소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40 오로지 마음만이 소통한다. 소통하려는 충동은 또한 창조하려는 충동이므로, 에고는 그러한 충동을 없애버릴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에고는 너에게 단지, 몸이 소통은 물론 창조도 할 수 있으며, 따라서 마음이 필요 없다고 가르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에고는 몸이 마음처럼 행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기 충족적이라고 가르치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행위는 가르치기를 위한 수준도 배우기를 위한 수준도 아님을 배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너는 네가 믿지 않는 것에 따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교사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너를 약화할 것이다. 거듭 강조했듯이, 너는 네가 믿는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는 레슨은 가르치는 것도 서툴고 배우는 것도 서툴 것이다. 네가 만약 병과 치유를 동시에 가르친다면, 너는 서툰 교사이자 서툰 학생이다.

41 치유는 누구나 개발할 수 있고, 치유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발해야 하는 유일한 능력이다. 치유는 성령의 소통 형식이며, 그가 아는 유일한 소통 형식이다. 성령은 다른 형식의 소통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는 몸과 마음에 대한 에고의 혼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들은 소통할 수 있지만, 해칠 수는 없다. 에고를 섬기는 몸은 다른 몸을 해칠 수 있지만, 네가 이미 몸을 마음과 혼동하고 있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사실 또한 치유나 마법에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마법은 항상 치유가 해롭다는 믿음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마법이 기초하는 완전히 미친 전제다. 따라서 마법은 그에 따라 전개된다.

42 치유는 오로지 강화할 뿐이다. 마법은 항상 약화하려 한다. 치유는 치유사 안에서 다른 모든 이가 그와 공유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지각하지 않는다. 마법은 항상 치유사 안에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보는데, 그는 그것을 갖지 않은 다른 이에게 자신이 그것을 선물로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 선물이 하느님에게서 왔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만약 자신이 다른 이에게 없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가 하느님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렇다면 너는 왜 어떤 치유는 이런 종류의 생각하기로부터 일어날 수 있는지 물을 만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43 "마법적인 치유사"가 아무리 잘못 인도되고 있을지라도, 그 또한 도우려고 하고 있다. 그는 갈등하고 불안정하지만, 때로는 온아들에게 무언가를 선사한다. 그리고 온아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치유다. 그렇다면 소위 "치유"가 효과가 있을 때는, 도우려는 충동과 도움을 받으려는 충동이 우연히 일치한 때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 이유는, 그 당시에 치유사는 자신이 진정으로 도움이 된다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가 도움이 된다는 상대방 마음 안의 믿음이 그를 돕기 때문이다.

44 성령은 우연에 의해 작업하지 않으며, 그로부터 오는 치유는 항상 효과가 있다. 치유사가 항상 성령에 의해 치유하지 않는 한, 그 결과는 이랬다저랬다 할 것이다. 하지만 치유 자체는 일관성이 있다. 오로지 일관성만이 갈등에서 자유롭고, 오로지 갈등에서 자유로운 것만이 온전하기 때문이다. 치유사는 제외 대상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리고 어떤 때는 치유를 할 수 있고 어떤 때는 할 수 없다고 인정함으로써, 분명 일관성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갈등 속에 있으며, 갈등을 가르치고 있다.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것 중에 모두를 위해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45 사랑은 어떤 제외 대상도 둘 수 없다. 오로지 두려움이 있을 경우에만 제외 대상이라는 아이디어가 의미 있어 보인다. 제외된 것은 두렵다. 그것은 두려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는 치유사"라는 말은 용어상 모순이며, 따라서 오로지 갈등하는 마음만이 의미 있다고 지각할 만한 개념이다. 두려움은 기쁘게 만들지 않는다. 치유는 기쁘게 만든다. 두려움은 항상 제외 대상을 만든다. 치유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분리를 야기하므로, 해리를 낳는다. 치유는 통합에서 비롯되므로, 항상 조화를 낳는다.

46 치유는 예측이 가능하다. 치유는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신뢰할 수 있다. 그분에게서 오는 모든 것은 전적으로 실제이기 때문이다. 치유를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하느님의 음성에 의해 고취되며, 또한 그분의 법칙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유가 정녕 일관성이라면, 치유는 일관되지 않게 이해될 수 없다. 이해는 일관성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일관성을 의미하시기 때문이다. 일관성은 하느님의 의미므로, 또한 너의 의미다. 너의 의미는 정녕 그분의 의미와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너의 전체 의미와 너의 유일한 의미가 그분의 의미에서 비롯되고, 그분의 의미를 닮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과 일치하지 않으실 수 없으며, 너는 그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없다. 너는 너의 창조주로부터 너의 자아를 분리할 수 없다. 그분은 당신의 존재를 너와 공유함으로써 너를 창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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