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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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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8분

뜻

96 너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받은 유산을 늘리는 데 실패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너 자신을 위해 안전하게 지키는 데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 유산을 너에게 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었으므로, 그분은 그것을 영원히 주셨다. 네가 그 유산을 영원히 갖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으므로, 그분은 너에게 그것을 간직할 수단을 주셨다. 그리고 너는 그것을 정녕 잘 간직해 왔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오로지 제정신이 아닌 자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실제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너의 자아 충만함은 하느님의 자아 충만함만큼이나 무한하다. 그분의 자아 충만함과 마찬가지로, 너의 자아 충만함도 완벽한 평화 속에 영원히 확장한다. 그것은 너무도 강렬히 빛나는 빛이라서 완벽한 기쁨 속에 창조하며, 그것의 온전성으로부터는 오로지 온전한 자들만이 태어날 수 있다.

97 너는 결코 너의 정체를 잃은 적이 없으며, 그것을 온전하고 평화롭게 유지해 주는 확장물들을 잃은 적도 없다. 이를 확신하라. 기적은 이런 확신의 표현이다. 기적은 네가 네 형제들과 제대로 동일시하고 있으며, 또한 너의 정체는 실로 확장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기적은 전체적인 지각에 대한 레슨이다. 네가 전체의 어떤 부분이든 이 레슨에 포함한다면, 이미 전부를 포함한 것이다. 너는 왕국과 그곳에 속하는 너의 창조물들에 대해 글을 쓸 때,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에고의 전제들이 낳은 전체 결과를 네가 아직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인 사실일 뿐이다.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왕국도 전제들이 낳은 결과다.

98 너는 에고의 추론을 그 논리적 결론으로 이끌어냈지만,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한 전체적인 혼동일 뿐이다. 하지만 너는 이것이 전체적인 혼동이라고 정말로 믿지는 않는다. 만약 믿었다면, 그런 혼동을 유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네가 이런 결과를 정말로 본다면, 그것을 원할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그런 결과의 어떤 부분이라도 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결과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에고의 전제들은 살펴보려 하지만 그 논리적 결과는 보려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네가 하느님의 전제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했을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99 너의 창조물들은 정녕 하느님의 전제들이 낳은 논리적 결과다. 하느님의 생각하기가 너를 위해 그들을 확립했다. 따라서 그들은 본래 속한 곳에 정확하게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정체에 대한 너의 동일시의 일부로서 본래 네 마음에 속한다. 하지만 네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그리고 네 마음 안에 무엇이 있다고 인식할지는 네가 주어진 순간에 네 마음에 대해 무엇을 믿는지에 달려있다. 그것이 어떤 믿음이든, 그것은 네 마음 안으로 무엇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할 전제다. 네가 네 마음 안으로 그곳에 실제로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곳에 있는 것을 부정할 수도 있다는 점은 아주 분명하다. 둘 중 어떤 가능성도 여기서 더 이상 공들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둘 다 네가 아무리 옹호하려 해도 옹호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100 하지만 하느님이 친히 당신의 마음을 통해 너의 마음에게 주신 기능을, 너는 부정할 수는 있을지라도 막을 수는 없다. 그 기능은 네 정체의 논리적 결과다. 어떤 논리적 결과를 보는 능력은 그것을 보려는 너의 용의에 달려있지만, 그것의 진리는 너의 용의와 전혀 관련도 없다. 진리는 하느님의 뜻이다. 그분의 뜻을 공유한다면, 너는 그분이 아시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분의 뜻을 너의 뜻이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너는 그분의 왕국은 물론 너의 왕국도 부정하는 것이다. 성령은 너를 오로지 고통을 피하도록 안내할 것이다. 고통을 무효화하면 분명 고통을 피할 것이다. 이런 목표를 인식한다면, 그것에 반대할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성령이 말하는 것이 참인지 여부가 아니라, 성령이 말하는 것에 네가 귀 기울이기를 원하는지 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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