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은 완전한 평화와 기쁨인데 네가 오로지 이것만 경험하지 않는다면, 너는 분명 그분의 뜻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분의 뜻은 영원히 변함없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네가 만약 평화롭지 않다면, 그것은 단지 네가 그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모든 것 안의 모든 것이시다. 그분의 평화는 완전하며, 너는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분의 법칙은 너를 지배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네가 하느님의 법칙을 거역할 수는 있을지라도, 너 자신을 그 법칙에서 제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법칙을 거역한다면, 그리고 오로지 그럴 때만, 너는 외로움과 무력함을 느낄 것이다. 그럴 때 너는 너 자신에게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6 자신에게 모든 것을 부정하는 세상에, 나는 빛으로서 왔다. 그 세상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부정하는 방법은 단지, 자신을 모든 것으로부터 해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세상은 고립이라는 환상으로서, 그 세상의 환상인 똑같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된다. 나는 항상,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도, 너와 함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세상의 빛인 이유다. 내가 세상의 외로움 속에서 너와 함께 있다면, 그 외로움은 사라진다. 그리고 네가 홀로 있지 않다면, 그 외로움이라는 환상을 유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의 목적은 정녕 세상을 극복하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공격하지 않지만, 나의 빛은 세상을 그 정체로 인하여 물리칠 수밖에 없다.
27 빛은 어둠을 공격하지 않지만, 정녕 어둠을 밝혀 물리친다. 나의 빛이 너와 함께 어디든지 가기에, 너는 나와 함께 어둠을 밝혀 물리친다. 빛은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리고 네가 가는 곳마다 어둠이 머물 수 없듯이, 너도 어둠 속에 머물 수 없다. 나를 기억하는 것은 정녕 너 자신을 기억하는 것이며, 나를 너에게 보내신 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온아들의 한 부분에서라도 하느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너는 어둠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모든 부분에 의해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그것이 달리 어떻게 완벽하게 성취될 수 있었겠는가? 나의 사명은 단지 스스로 아버지의 뜻을 자각함으로써 온아들의 뜻을 아버지의 뜻과 연합하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러한 자각을 너에게 주려고 왔으며, 네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겪는 어려움은 정녕 이 세상이 겪는 어려움이다. 이런 어려움을 물리치는 것이 곧 구원이며,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정녕 세상의 구원이다.
28 세상은 나를 멸시하고 거부할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정녕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에게 보이는 반응은 세상이 하느님께 보이는 반응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너는 세상을 부정하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뜻은 곧 그분의 뜻이며, 나에게 귀 기울이겠다는 너의 뜻은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그분의 뜻 안에 머물겠다는 결정이다. 하느님이 나를 너에게 보내셨듯이, 나도 너를 다른 이들에게 보낼 것이다. 그리고 나도 너와 함께 그들에게 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연합과 평화를 가르칠 수 있다.
29 너에게 평화가 필요하듯, 세상도 평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네가 평화를 받기를 원하듯, 세상에게도 평화를 주기를 원하지 않는가? 너는 평화를 주지 않는 한 평화를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에게서 평화를 가져가고자 뜻한다면, 반드시 평화를 주어야 한다. 회복은 다른 누구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안내는 너의 외부로부터 올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 안내는 네가 원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 무의미할 것이다. 이런 까닭에, 회복은 협력적인 모험이다.
30 나는 네가 무엇을 행해야 할지 말해줄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무엇을 행해야 할지 내가 안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협력하지 않는 한, 그것은 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의 마음은 그것을 믿을 때만 나를 따르기로 선택할 것이다. 너는 너의 뜻 없이는 회복될 수 없다. 치유되려는 동기가 회복에서 결정적인 요인이다. 이것이 없다면 너는 치유에 반하여 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너를 위한 나의 뜻을 거부한다면, 치유는 불가능해진다. 치유는 우리의 결합된 뜻이므로, 우리의 뜻이 결합되어 있지 않는 한 너는 치유될 수 없다. 치유의 목적이 무엇인지 숙고해 본다면, 이것은 분명하다. 치유는 분리를 극복하는 방법이다. 분리는 연합을 통해 극복된다. 분리는 분리하기를 통해서는 극복될 수 없다.
31 연합하겠다는 뜻은 확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뜻 자체가 나뉘거나 온전하지 못하게 된다. 너의 뜻은 너 자신의 상태를 결정하는 수단이다. 뜻이란 곧 결정의 기제이기 때문이다. 너의 뜻은 너로 하여금 분리하거나 결합하게 하고, 그에 따라 고통이나 기쁨을 경험하게 하는 권능이다. 나의 뜻은 너의 뜻을 이길 수 없다. 너의 뜻은 나의 뜻만큼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의 아들들은 동등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결합된 뜻을 통해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나의 뜻만으로는 너를 도울 수 없다. 너의 뜻은 나의 뜻만큼이나 자유로우며, 하느님도 너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그분이 뜻하지 않으시는 것을 뜻할 수 없다. 나는 너에게 나의 뜻을 제공하여, 이러한 공유를 통해 너의 뜻을 아무도 꺾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너의 뜻에 맞선다면, 나는 너의 뜻과 경쟁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을 침해하게 된다.
32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그 무엇도 너의 뜻을 반대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은 그 무엇도 그분의 뜻을 반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느님이 너의 뜻에 그 권능을 부여하셨으며, 나는 그분의 뜻에 경의를 표하여 그것을 단지 인정할 수만 있을 뿐이다. 네가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면, 나는 너를 도울 것이다. 나는 우리가 서로 닮았음을 알기 때문이다. 네가 다르기를 원한다면, 나는 네가 마음을 바꿀 때까지 기다리겠다. 나는 너를가르칠 수 있지만, 오로지 너만이 내 가르침에 귀 기울이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하느님의 왕국은 곧 자유이거늘, 그것이 어찌 달리 될 수 있겠는가? 자유는 어떤 종류의 독재를 통해서도 배울 수 없으며, 하느님의 모든 아들들의 완벽한 동등성은 한 뜻이 다른 뜻을 지배하는 것을 통해서는 인식될 수 없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이기에, 뜻에 있어서 동등하다. 나는 이와 같은 단 하나의 레슨을 가르치러 왔다. 나는 그것이 참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