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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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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3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7분

제3장 마음의 재훈련

Ⅵ. 갈등과 에고

38   지금 사람이 소유한 능력은 단지 그의 진정한 강점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의 모든 기능은 분명하지 않으며, 의문과 의혹의 여지가 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확신이 없기에, 그에게는 앎이 불가능하다. 그에게 앎이 불가능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사랑 없이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확실하게 창조할 수 없다. 그의 지각은 속이며, 환상들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등급과 양상, 간격이 분리로 인해 도입되기 전에는 지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영혼에는 수준이 없으며, 모든 갈등은 수준들이라는 개념에서 발생한다. 전쟁은,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다른 수준에 있다고 여길 때 일어난다. 개인간의 모든 갈등은 이러한 오류로부터 일어난다. 오로지 삼위일체의 수준들만이 통일이 가능하다. 사람이 분리를 통해 창조한 수준들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수준들은 본질적으로 서로에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39   프로이트는 이것을 완벽하게 알아차리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정신에 대한 그의 관점 안에 있는 수준들이 영원히 화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들은 정의상 갈등하기 쉽다. 그것들은 다른 것들을 원하고 다른 원리들을 따르기 때문이다. 정신에 대한 우리의 그림에는 무의식 수준이 하나 있는데, 이 수준은 오로지 기적 능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나의 인도 아래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의식 수준도 하나 있는데, 이 수준은 무의식과 초의식 둘 다에서 오는 충동들을 지각하거나 알아차린다. 이렇게 의식은 앎의 수준이 아니라 지각의 수준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각하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40   의식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들여온 최초의 분열이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자가 아닌 지각자가 되었다. 의식은 에고의 영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에고는 사람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않고 자신이 바란 모습대로 지각하려는 인위적인 시도다. 이것은 우리가 전에 말한 창조된 자와 창조자에 대한 혼동의 한 사례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을 오로지 있는 그대로만 알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 확신할 수 있는 전부기 때문이다. 그밖에 모든 것은 정녕 의문의 여지가 있다.

41   에고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창조한 분리 이후의 정신 안에서, 질문하는 부분이다. 에고는 타당한 질문을 할 수는 있지만 타당한 답은 지각하지 못한다. 그 답은 인지적인 것으로서, 지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의 의미에 대한 끝없는 추론은 상당한 혼란을 초래했는데, 왜냐하면 마음은 정녕 혼란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한 마음 상태만이 혼란이 없다. 분리된 마음, 즉 분열된 마음은 혼란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으며, 정의상 확신이 없다. 그 마음은 자기 자신과 일치되어 있지 않으므로, 갈등할 수밖에 없다.

42 개인 안에서의 갈등은 개인들 간의 갈등과 같은 이유로 일어난다. 정신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다른 수준에 있다고 지각하며, 그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 부분들은 서로를 인식하지 않는 낯선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두려움을 일으키기 쉬운 조건의 본질로서, 이 상태에서는 공격이 언제든 가능하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을 지각할 때 두려움을 느낄 만한 온갖 이유가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창조하지도 않았고 창조할 수도 없었음을 알기 전에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결코 자신의 그릇된 지각을 타당하게 만들 수 없다. 사람의 창조는 그의 잘못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있으며, 그런 까닭에 그는 결국 분리를 치유하려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43   바른 마음 상태와 아는 마음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바른 마음 상태는 오로지 바른 지각에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는 바른 마음 상태에 있거나 그른 마음 상태에 있을 수 있으며, 이조차도 등급이 있다. 이것은 앎과의 관련성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실이다. "바른 마음 상태"라는 용어는 "그른 마음 상태"에 대한 교정으로서 적절하게 사용되며, 정확한 지각을 유발하는 마음 상태에 해당된다. 바른 마음 상태가 기적적인 이유는, 그것이 그릇된 지각을 치유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방법을 고려할 때, 이것은 정녕 기적이다.

44   지각은 항상 뜻의 오용을 어느 정도 수반한다. 지각은 마음을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마음은 뜻하는 힘을 가졌으므로, 아주 활동적이다. 마음은 분리를 뜻했을 때 지각하기를 뜻했다. 그때까지 마음은 오로지 알기만을 뜻했다. 그 이후로 마음은 모호하게 뜻했으며, 이런 모호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명확한 지각이다. 마음은 알고자 뜻할 때만 자신의 고유한 기능으로 돌아간다. 이로 인해 마음은 영혼을 섬기는 자리에 있게 되며, 그곳에서 지각은 무의미하다. 초의식은 이러한 것을 뜻하는 마음의 수준이다.

45   마음이 자신의 수준들은 물론 지각하는 능력도 창조하기로 뜻했을 때, 마음은 자기 자신을 분열시키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마음은 자기 자신을 영혼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었다. 마음은 창조하는 능력 전체를 영혼에서 얻어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릇되게 창조할 때조차 뜻은 마음의 근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마음은 그저 존재하기를 멈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마음은 영혼의 일부인데, 영혼은 하느님이 창조하셨으므로 영원하기 때문이다.

46   지각하는 능력은 몸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너는 무언가를 가지고, 무언가를 지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각은 교환이나 해석을 수반한다. 하지만 앎은 그것들이 필요 없다. 지각의 해석 기능은 실제로 왜곡된 형식의 창조며, 그로 인해 사람은 몸을 자기 자신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우울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람 자신이 유발한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참으로 아는 초의식은 이러한 권능의 상실과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초의식은 어두워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초의식은, 마음은 거의 접근할 수 없고 몸은 완전히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47   그 후로 초의식은 위협적인 존재라고 지각되었다. 빛은 단지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립함으로써 어둠을 폐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는 언제나 잘못을 이길 것이다. 이것은 전혀 적극적인 파괴 과정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강조했듯이, 앎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앎은 공격자로 지각될 수 있지만, 공격할 수는 없다. 사람이 "앎의 공격"이라고 지각하는 것은 단지, 앎은 결코 파괴된 적이 없으므로 언제라도 기억될 수 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인식하는 것에 불과하다.

48   하느님과 그분이 창조하신 영혼들은 확실성 안에 머물며, 따라서 그릇된 창조물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안다. 진리는 저항하는 잘못은 다룰 수 없다. 그러한 잘못은 스스로 사라지기를 뜻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영혼과 영혼의 앎을 기억한 사람이었으며, 사람으로서의 나는 잘못에 앎으로 대항하려고 하기보다는 밑에서부터 위로 교정하려고 했다. 나는 몸의 무력함과 마음의 힘을 모두 보여주었다. 나는 나의 뜻을 나의 창조주의 뜻과 연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혼과 영혼의 진정한 목적을 기억했다.

49   나는 너를 대신해 너의 뜻을 하느님의 뜻과 연합해 줄 수 없지만, 너의 마음을 나의 안내에 맡긴다면, 너의 마음에서 일체의 그릇된 지각을 지워줄 수는 있다. 오로지 너의 그릇된 지각들만이 너의 길을 가로막는다. 그것들이 없다면, 너의 선택은 확실하다. 제정신인 지각은 제정신인 선택을 유발한다. 속죄는 진정한 지각에 근거한 행위였다. 나는 너를 대신해 선택할 수 없지만, 너 자신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는 있다. "많은 이들이 부르심을 받지만, 적은 이들만이 선택된다."라는 말은 "모든 이가 부르심을 받지만, 적은 이들만이 듣기로 선택한다. 따라서 그들은 바르게 선택하지 않는다."로 읽어야 한다.

50 "선택된 자들"이란 단지 먼저 바르게 선택한 자들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천상의 가속화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뜻이 굳건한 자들은 그것을 지금 할 수 있다. 그러면 너는 네 영혼을 위한 안식을 찾을 것이다. 하느님은 너를 오로지 평화 속에서만 아시며, 이것이 바로 너의 실재다.

제3장 마음의 재훈련 - Ⅴ. 지각 대 앎제3장 마음의 재훈련 - Ⅶ. 확실성의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