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성령의 결과를 통하지 않는다면, 네가 어떻게 네 안의 성령을 점점 더 잘 알아차릴 수 있겠는가? 너는 성령을 눈으로 볼 수 없으며, 귀로 들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성령을 지각할 수 있겠는가? 네가 기쁨을 고취하고, 비록 너 자신은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기쁨으로 반응한다면, 기쁨을 자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네 안에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이 네 안에 있고 기쁨을 자아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 안에서 기쁨을 자아내는 것을 네가 본다면, 너는 그것을 네 안에서 해리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32 성령이 네 안에서 일관되게 기쁨을 자아내지 않는 듯이 보이는 이유는 단지, 네가 다른 사람들 안에서 일관되게 기쁨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그들이 너에게 보이는 반응으로 성령의 일관성을 평가한다. 너 자신이 일관되지 않을 때는 기쁨을 항상 불러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너는 성령의 일관성을 항상 인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네가 네 형제에게 주는 것은 곧 성령께 드리는 것이다. 성령은 네가 드리는 것보다 더 많이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이 주기를 제한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말해 네가 받기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받겠다는 뜻은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33 네 형제들이 정녕 너의 일부라면, 너는 그들을 받아들이겠는가? 오로지 그들만이 너에게 너의 정체를 가르쳐줄 수 있으며, 너의 배움은 네가 그들에게 가르친 것의 결과다. 너는 그들 안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을 너 자신 안에서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네가 그것을 그들 안에서 불러일으킬 때, 그것은 너에게 실제가 된다. 하느님은 오로지 한 아들만 두셨으며, 그들 모두를 하나로서 아신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그들 이상이시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그분 이하인 것은 아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네가 내 형제에게 행하는 것은 곧 나에게 행하는 것이고, 또 우리는 너의 일부이므로 너는 모든 것을 너 자신을 위해 행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너에게도 속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은 정녕 너의 일부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너와 함께 공유한다. 하느님의 영광은 그분께 속하지만, 마찬가지로 너의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 네가 그분보다 덜 영광스러울 수는 없다.
34 하느님이 너 이상이신 이유는 단지, 그분이 너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은 이것조차도 너에게 금지하려 하지 않으신다. 그러하기에 너는 정녕 그분이 창조하셨듯이 창조할 수 있으며, 너의 해리 상태는 이것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빛도 너의 빛도 네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흐려지지 않는다. 온아들은 반드시 하나로서 창조해야 하며, 따라서 너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의 일부를 인식할 때마다 창조를 기억하는 것이다. 네가 기억하는 각 부분은 너의 온전성을 증가시켜 준다. 각 부분은 정녕 온전하기 때문이다. 온전성은 나뉠 수 없다. 그러나 네가 모든 곳에서 온전성을 볼 때까지, 너는 너 자신의 온전성에 대해 배울 수 없다. 너는 오로지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을 아시는 것처럼만 너 자신을 알 수 있다. 앎은 하느님과 공유되기 때문이다. 네가 하느님 안에서 깨어날 때 그분의 무한함을 너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너의 엄청난 크기를 알게 되겠지만, 그동안에는 네 형제들의 크기를 판단하는 대로 너의 크기를 판단하고, 그들의 크기를 받아들이는 대로 너의 크기를 받아들일 것이다.
35 너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지만, 깨어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 아주 간단히 말해, 성령은 너에게 다른 이들을 깨우는 법을 가르친다. 너는 그들이 깨어나는 것을 보면서 깨어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울 것이며, 또한 네가 그들을 깨우기로 뜻했으므로, 네가 준 것에 대한 그들의 감사와 인정은 너에게 그것의 가치를 가르쳐줄 것이다. 그들은 너의 실재에 대한 증인이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너희가 하느님의 실재에 대한 증인들로 창조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온아들이 함께 모여 자신의 하나인 상태를 받아들일 때, 온아들은 자신의 창조물들에 의해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온아들의 실재에 대해 증언한다.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증언하듯이….
36 기적은 영원 안에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기적은 회복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에게 아직 치유가 필요한 동안은, 네가 행하는 기적만이 네가 인식할 수 있는 너의 실재에 대한 유일한 증거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 기적을 행할 수 없다. 기적이란, 받아들임을 주는 방법이자 받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서는, 주기가 먼저 일어난다. 하지만 영원 안에서 주기와 받기는 동시에 일어나며, 분리될 수 없다. 주기와 받기가 정녕 똑같음을 배웠을 때, 시간의 필요성은 사라진다.
37 영원은 그 유일한 차원이 "항상"인 단 하나의 시간이다. 하지만 네가 하느님의 열린 팔을 기억하고 마침내 그분의 열린 마음을 알 때까지, 이것은 너에게 아무것도 의미할 수 없다. 하느님처럼 너도 "항상", 그분의 마음 안에 있으면서 그분의 마음과 닮은 마음을 가졌다. 너의 열린 마음 안에는 완벽한 이해에서 태어나 완벽한 소통 상태에 있는 너의 창조물들이 있다. 네가 그들 가운데 하나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상이 제공하는 그 무엇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완전히 무의미할 것이다. 네가 없다면 하느님의 의미는 불완전하며, 너의 창조물들이 없다면 너도 불완전하다. 이 세상에서 너의 형제를 받아들이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말라. 그의 내면에서, 너는 너의 창조물들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너와 더불어 그들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네 형제는 너와 더불어 공동 창조자다. 네가 이것을 배우기 전에는, 네가 하느님과 더불어 공동 창조자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