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우리는 전에, 평화를 제거하려는 너의 욕구야말로 평화가 극복해야 할 첫 번째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죄의식의 매력이 전권을 휘두르는 곳에서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첫 번째 장애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평화가 흘러 넘어가야 하는 두 번째 장애물은, 몸이 제공하는 것 때문에 몸이 가치 있다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죄의식의 매력이 몸에 드러나게 되어, 몸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60 너는 바로 이 가치를 평화가 너에게서 강탈해 가려 한다고 생각한다. 너는 바로 이것을 평화가 빼앗아 가서 너를 집 없는 신세로 만들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위해, 너는 평화에게 집을 제공하기를 거부하려 한다. 너는 바로 이 "희생"이야말로 네가 치르기에는 너무 크고, 너에게 요구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라고 느낀다.
61 그것이 과연 희생인가 해방인가? 몸 안에 구원이 놓여있다는 너의 이상한 믿음을 정당화하는 그 무엇을 몸이 실제로 너에게 주었는가? 이것이 죽음에 대한 믿음임을 보지 못하겠는가? 여기에서, 지각은 속죄를 살인으로 보는 데 집중한다. 바로 이것이, 사랑은 곧 두려움이라는 아이디어의 근원이다. 성령의 메신저들은 몸 너머로 멀리 파견되어, 마음에게 거룩한 영적 교통에 동참하여 평화로워지라고 청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너희를 위해 그들에게 준 메시지다.
62 오로지 두려움의 메신저들만이 몸을 본다. 그들은 고통받을 수 있는 것을 찾기 때문이다. 고통받을 수 있는 것을 떠나는 것이 희생인가? 성령은 너에게 몸의 쾌락에 대한 희망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몸에는 쾌락에 대한 희망이 전혀 없다. 하지만 몸은 또한 너에게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줄 수 없다. 고통은 성령이 요구하는 유일한 "희생"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을, 성령은 제거하고자 한다.
63 평화는 너로부터 출발하여 오로지 영원한 것만을 향해 확장한다. 그리고 평화는 네 안에 있는 영원한 것으로부터 바깥을 향해 뻗어나간다. 평화는 다른 모든 것을 넘어 흘러간다. 첫 번째 장애물처럼 두 번째 장애물도 단단하지 않다. 너는 평화를 제거하거나 제한하려고 뜻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평화와 평화의 전진 사이에 세우려는 이런 장애물들은 단지, 너의 뜻과 그것의 성취 사이에 세우는 장벽이 아니겠는가? 너는 두려움의 만찬이 아닌 영적 교통을 원한다. 너는 죄의식의 고통이 아닌 구원을 원한다. 너는 작은 진흙더미가 아닌 아버지가 너의 집이 되시기를 원한다. 너희의 거룩한 관계 안에, 아버지의 아들이 있다. 그는 아버지는 물론 자기 자신과도 영적 교통을 잃지 않았다. 너희가 서로 결합하기로 동의했을 때, 너희는 이것이 그러함을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희생을 전혀 요구하지 않으며, 오히려 희생에서 해방한다.
64 너는 너의 환상을 위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그렇게 얻은 것 중에 그 무엇도 너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천국은 희생될 수 없으며, 너에게는 희생이 요구될 수 없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은가? 너는 우리의 거룩한 연합 앞에 어떤 장애물도 설치할 수 없다. 너희의 거룩한 관계 안에, 내가 이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것이다. 우리는 문밖이 아니라 문안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 문이 안으로부터 얼마나 쉽게 열려, 평화가 흘러 넘어가 지친 세상을 축복하게 하는지! 너희가 이미 한계 없는 것과 결합했거늘, 우리가 함께 장애물을 통과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겠는가? 죄의 종말이 너희의 손안에 있으며, 너희는 그것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서로에게서 죄를 찾으려고 멈추려는가?
65 나를 죄의 종말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삼고, 나를 보듯이 서로를 바라보라. 너희가 하느님의 아들이 지었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죄에 대해 나를 용서하라. 너희 용서의 빛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기억하고,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을 잊을 것이다. 내가 너희의 용서를 청하는 이유는, 너희가 유죄라면 나도 유죄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죄를 극복하고 세상을 이겼다면, 그때 너희도 나와 함께 있었다. 너희는 내 안에서 죄의 상징을 보려는가 아니면 죄의 종말의 상징을 보려는가? 내가 너희에게 의미하는 것을 너희 자신 안에서 본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이에 대해 생각해 보라.
66 너희의 거룩한 관계로부터, 진리는 진리를 선포하고 사랑은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 너희가 아버지와 나에게 제공한 집의 깊은 곳에서 구원이 흘러나온다. 아버지와 아들이 결합한 조용한 영적 교통 안에서, 우리는 함께 있다. 오! 신실한 자들이여, 너희 내면에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한 연합으로 오라! 너희가 평화에게 천국 안의 집을 준 것에 대한 감사로 너희에게 제공되는 것을 물리치지 말라. 죄의 종말이라는 기쁜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라. 그러면 온 세상이 응답할 것이다. 모든 이가 너희에게 죄의 종말에 대해 증언하고 죄의 힘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보여줄 때, 너희가 얼마나 행복할지 생각해 보라. 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을 때, 죄의식이 과연 어디에 있을 수 있겠는가? 죽음의 강력한 변호인의 말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죽음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인가?
67 너희의 환상에 대해 나를 용서하고,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처벌에서 나를 놓아주어라. 그렇게 너희는 서로에게 자유를 가르침으로써 내가 가르친 자유를 배울 것이며, 또한 그렇게 나를 놓아줄 것이다. 나는 너희의 거룩한 관계 안에 있지만, 너희는 자유에 맞서 세운 장애물 뒤에 나를 가둬서 내가 너희에게 가는 길을 막으려 한다. 하지만 이미 거기에 있는 성령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 그리고 성령 안에서, 우리가 이미 참여하는 영적 교통은 너희 안에 있는 온 세상에 빛을 가져다줄 새로운 지각의 중심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