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우리는 그동안 한 수준의 마음은 다른 수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에고와 영혼, 시간과 영원이 바로 그러하다. 영원은 하느님의 아이디어이며, 따라서 영혼은 영원을 아주 잘 이해한다. 시간은 에고의 믿음이며, 따라서 에고의 영역인 하위마음은 그것을 의문 없이 받아들인다. 진정으로 영원한 시간의 유일한 측면은 지금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은 유일한 시간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보면, 에고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에고는 이 말이 기껏해야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를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그 말의 진짜 의미가 아니다.
38 성령은 에고의 해석과 영혼의 앎 사이의 중재자다. 성령은 상징을 다루는 능력 덕분에, 에고 자신의 언어로 에고의 믿음을 거슬러 작업할 수 있다. 그리고 상징 너머로 영원을 바라보는 똑같은 능력 덕분에, 자신이 대변하는 하느님의 법칙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성령은 에고가 만드는 것을 파괴가 아닌 이해를 통해 재해석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이해는 곧 빛이며, 빛은 앎으로 이어진다. 성령은 빛 속에 있다. 성령은 너희 안에 있는데, 너희가 곧 빛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희 자신은 이것을 모른다. 따라서 하느님을 대신해 너희를 재해석하는 것이 성령의 과제다.
39 너희 자신만으로는 너희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너희는 온아들 안에서 정당히 있어야 할 곳, 온아들이 하느님 안에서 정당히 있어야 할 곳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너의 생명이고, 너의 영원이며, 너 자신이다. 바로 이것에 대해, 성령은 너에게 일깨워 준다. 바로 이것이, 성령이 보는 것이다. 이러한 비전은 항상 에고를 겁먹게 한다. 그것은 지극히 평온하기 때문이다. 평화가 에고의 가장 큰 적인 이유는, 실재에 대한 에고의 해석에 따르자면 전쟁은 에고의 생존에 대한 보증서이기 때문이다. 에고는 분쟁 속에서 강해진다. 네가 만약 분쟁이 있다고 믿는다면, 무자비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럴 때는 위험이라는 아이디어가 이미 네 마음 안으로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디어 자체가 곧 에고에게 하는 호소다.
40 성령도 에고처럼 위험의 부름에 경계해 깨어있으면서, 그것에 힘껏 맞선다. 이것은 마치 에고가 그것을 온 힘을 다해 맞아들이는 것과 같다. 이러한 에고의 맞아들임을, 성령은 평화를 맞아들임으로써 저지한다. 시간과 전쟁이 그러하듯, 평화와 영원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앎뿐만 아니라 지각도 관계에서 의미를 얻는다. 네가 받아들이는 관계가 네 믿음의 토대다. 분리란 단지 갈라진 마음을 나타내는 다른 용어일 뿐이다. 분리는 어떤 행위가 아닌, 하나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분리라는 아이디어는 연합이라는 아이디어처럼 다른 이에게 주어질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그 아이디어는 주는 자의 마음 안에서 강화될 것이다.
41 성령이 평화의 상징이듯, 에고는 분리의 상징이다. 너는 다른 사람 안에서 지각한 것을 너 자신 안에서 강화한다. 너는 너의 마음으로 하여금 그릇되게 지각하도록 하지만, 성령은 너의 마음으로 하여금 스스로 그릇되게 지각한 것을 재해석하도록 한다. 성령은 완벽한 교사다. 그는 너의 마음이 이미 이해하는 것만을 사용하여, 네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성령은 배울 뜻이 없는 학습자도 그 뜻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잘 다룰 수 있다. 학습자의 뜻은 그 일부가 여전히 하느님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그것을 감추려는 에고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에고보다 훨씬 더 강하다. 비록 에고는 그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성령은 그 부분을 완벽하게 인식한다. 그 부분은 성령 자신이 머물러 사는 곳, 즉 마음 안에서 성령이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기 때문이다.
42 너 역시 그곳에서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낀다. 그곳은 평화가 있는 곳이며,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일부인 너는 그분의 평화가 아닌 곳에서는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평화가 영원하다면, 너는 오로지 영원 속에서만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에고는 자신이 지각하는 대로의 세상을 만들었지만, 에고가 만든 것의 재해석자인 성령은 세상을 바라볼 때, 너를 집에 데려가기 위한 가르침의 도구로서만 본다. 성령은 시간을 지각해서 무시간성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마음은 시간을 통해 영원으로 인도되어야 한다. 마음이 시간을 만들었다면, 시간의 반대도 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43 성령은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통해 작업해야 한다. 그는 반대하고 있는 마음과 함께, 그 마음을 위해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정하고 배워라. 그리고 배움에 마음을 열라. 네가 진리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진리는 여전히 너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성령이 보듯이 보고, 성령이 이해하듯이 이해하라. 성령의 이해는 나를 기억하여 하느님을 돌아본다. 성령은 항상 거룩한 영적 교통 상태에 있으며, 성령은 너의 일부다. 그는 너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안내자다. 그는 지나간 것과 앞으로 올 것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이러한 기쁨을 너희 마음 안에 살며시 간직하고 있으면서, 너희에게 다만 그 기쁨을 공유하여 그의 이름으로 늘림으로써 너희 안에서 그의 기쁨을 늘려달라고 청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