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너는 나의 메시지를, 에고의 방해 없이 내가 주는 대로 받을 용의를 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전에 말한 요점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네가 언젠가 배우는 만큼 가르칠 것이며, 그것은 너의 균형을 유지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왜냐하면 너는 그때가 바로 지금이 되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너는 가르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다.
52 내가 오로지 한 음성만 들은 이유는, 배우기는 가르치기에 의해 이루어짐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홀로는 나 자신을 속죄할 수 없음을 이해했다. 한 음성에 귀 기울이는 것은, 그 음성을 너 스스로 듣기 위해 공유하겠다는 뜻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내 안에 있던 마음은 여전히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마음에게 저항할 수 없이 이끌린다. 하느님의 온전성은 정녕 그분 아들의 온전성이기 때문이다.
53 다른 뺨을 대주라는 말은 폭력에 이의 없이 굴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네가 정녕 해침을 당할 수 없으며, 네 형제에게 너의 온전성 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 그가 너를 해칠 수 없음을 보여주고, 그 무엇도 그를 비난하기 위해 사용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너 자신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하게 된다. 가르치기는 여러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가르치는 방법에는 공식적인 수단으로 가르치기, 안내를 통해 가르치기, 무엇보다도 모범을 통해 가르치기가 있다. 가르치기는 치료다. 가르치기는 아이디어를 공유한다는 의미이며,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그것을 강화하는 것임을 자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온아들의 연합이 곧 온아들의 보호다. 에고가 천국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천국이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로 존재하라는 성령의 부름을 온아들의 부분들이 들을 때, 에고는 그 매력 앞에서 점점 희미해지다가 무효화된다.
54 나는 내가 배운 것을 가르쳐야 할 필요성을 잊을 수 없다. 그 필요성이 내 안에서 일어난 이유는, 내가 그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도 네가 배운 것을 가르치라고 요청한다. 그럼으로써 너는 그것을 신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이름으로, 그것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라. 나의 이름은 하느님 아들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배운 것을 아낌없이 주며, 내 안에 있던 마음은 네가 그것을 듣기로 선택할 때 크게 기뻐한다. 성령은 무효화를 통해 우리 모두 안에서 속죄하며, 그럼으로써 네가 너의 마음에 지웠던 짐을 덜어준다. 네가 성령을 따르면, 그는 너를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인도한다. 그곳은 네가 본래 속한 곳이다. 하지만 네 형제를 함께 데려가는 방법 말고, 네가 어떻게 그 길을 찾을 수 있겠는가?
55 내가 속죄에서 맡은 역할은 네가 속죄에 동참하여 속죄를 나눠주기 전에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네가 가르치는 대로 배울 것이다.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도 저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너를 저버리는 것은 나 자신은 물론 나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네 형제들 가운데 누구라도 저버린다면, 너 자신과 하느님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너는 네 형제를 지키는 자 이상의 어떤 존재다. 사실 너는 그를 지키기를 원하지 않는다. 너는 그를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도 너처럼 본래 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것보다 네 형제를 더 잘 대접할 방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56 아이디어는 그것을 생각한 마음을 떠나서 분리된 존재를 갖지 않으며, 분리된 생각들은 공간 안에서 서로 갈등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공간을 전혀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아이디어들은 내용 면에서는 갈등할 수 있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수준에서 일어나며, 같은 수준에서도 서로 반대되는 생각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서로 반대되는 생각들을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은 너로 하여금 네 형제들을 저버리게 하지 않는다. 따라서 너는 실제로 네 생각들 가운데 오로지 성령에게서 나온 부분, 그리고 성령이 또한 너를 위해 간직하고 있는 부분만 공유할 수 있다. 그러한 것이 바로 천국이다. 나머지 모든 생각은, 성령이 천국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역시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게 만들 때까지 너에게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충분히 정화되었을 때, 성령은 너로 하여금 그것들을 나눠주게 한다. 그 생각들을 공유하려는 뜻이야말로 그것들을 정화하는 것이다.
57 속죄는 너에게 치유된 마음의 권능을 부여하지만, 창조하는 권능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그러므로 용서받은 자들은 먼저 치유에 헌신해야 한다. 그들이 일단 치유라는 아이디어를 받았으면, 그것을 나눠주어야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이디어들 가운데 누구라도 천국에 창조의 권능을 주지 않고 유보하는 한, 그 권능은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다. 온아들 전체의 결합된 뜻은 아버지처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창조자다. 오로지 완전한 자들만이 완전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각하기는 아무것도 결핍되어 있지 않다. 네가 성령을 통해 생각하지 않는 모든 생각은 정녕 결핍되어 있다.
58 그렇게도 거룩한 네가 어떻게 고통받을 수 있겠는가? 너의 과거는 그 아름다움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라졌으며, 축복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너는 정녕 평화 속에 떠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했듯이 너를 사랑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축복을 지니고, 나의 축복을 전하러 가라. 나의 축복을 간직하고 공유하라. 그리하여 그것을 영원히 우리 것으로 만들라. 너의 가슴과 너의 두 손에 하느님의 평화를 놓아두니, 그것을 간직하고 공유하라. 너의 가슴은 그것을 간직할 만큼 순수하고, 너의 두 손은 그것을 나눠줄 만큼 강하다. 우리는 실패할 수 없다. 나의 판단은 하느님의 지혜만큼이나 강력하며, 그분의 가슴과 손안에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갖는다. 하느님의 조용한 아이들은 그분의 축복받은 아들들이다. 하느님의 생각들이 너와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