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42. 온전성은 기적이 지각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기적은 결핍이라는 그릇된 지각을 모든 곳에서 교정한다. 즉, 속죄한다.
62 여기서 우리는 기적과 투사를 근본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자극이 먼저 있어야 반응이 있을 것이며, 자극은 촉발되는 반응의 종류도 결정할 것이다. 행동은 반응이며, 따라서 "무엇에 대한 반응인가?"라는 질문이 아주 중요해진다. 그런데 자극은 지각을 통해 식별되므로, 너는 먼저 자극을 지각한 다음에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63 너는 네가 지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64 황금률은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에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는 너와 상대방 둘 다에 대한 지각이 정확해야 함을 의미한다. 황금률은 적절한 행동을 위한 법칙이다. 정확하게 지각하지 않는 한 적절하게 행동할 수 없다. 적절한 행동은 수준 혼동이 없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준 혼동이 있으면 실재 검증 결과가 항상 가변적이 되며, 따라서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지도 가변적이 된다. 너와 너의 이웃은 한 가족의 동등한 구성원이므로, 너는 너와 너의 이웃 둘 다를 지각하는 대로 둘 다에게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황금률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지각하는 방법은, 먼저 너 자신의 거룩함을 지각한 다음에 밖으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거룩함을 지각하는 것이다.
65 두려움이 낳은 공허는 반드시 사랑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사랑과 사랑의 부재는 같은 차원에 있으며, 교정은 오로지 같은 차원 안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는 분명 수준 혼동이 있었다. 죽음은 사람이 증오에 대한 믿음, 즉 수준 혼동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서가 "죽음은 없다."라고 말하고, 내가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 까닭이다. 나는 율법을 재해석함으로써 완성하러 왔다.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율법 자체는 사람에게 오로지 보호만을 제공할 뿐이다. 율법에 "지옥 불"의 개념을 끼워 넣은 자들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은" 자들이다.
66 나는 누구든지 나를 허락하는 자를 위해, 그가 허락하는 정도까지 증언하겠다고 확약한다. 너의 믿음은 너의 증언을 통해 입증되며, 그 과정에서 더욱 강화된다. 나를 위해 증언하는 자들은, 본래 그들에게 속한 것임을 배운 풍요를 위해 박탈에 대한 믿음을 버렸음을 그들의 기적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67 43. 기적은 사람을 부적절한 고립감과 박탈감, 결핍감에서 해방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 주되게 공헌하는 점이다.
68 기적은 온아들에 대한 확인이며, 온아들이란 곧 완성과 풍요로움의 상태다. 참되고 실제인 것은 모두 영원하며, 변하거나 변화될 수 없다. 따라서 영혼은 이미 완벽하기에 바뀔 수 없지만, 마음은 자신이 섬기려는 수준을 선택할 수 있다. 마음의 선택에 가해진 유일한 제한은 바로, 마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점이다.
69 마음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다면, 영혼이 자신이 창조된 대로 창조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게 하기로 자유롭게 선택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자신의 창조적 잠재력은 보유하겠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권위 있는 통제가 아닌 폭정 아래 두게 된다. 그 결과 마음은 감금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폭군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곧 그것을 진정한 권위의 처분에 맡긴다는 의미다.
70 이와 같이 기적은 마음이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의 인도를 받기로 선택했다는 표시다. 그리스도의 풍요는 그를 따르겠다는 선택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얕은 뿌리들은 전부 뿌리 뽑혀야 한다. 그것들은 너를 지탱해 줄 만큼 깊지 않기 때문이다. 얕은 뿌리가 더 깊어져서 너를 붙들어 줄 수 있게 된다는 환상은 역전된 황금률이 근거하는 왜곡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가짜 지지대를 포기함에 따라 평형 상태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사실 위아래가 뒤집힌 방향보다 더 불안정한 것은 없다. 또한 그런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어떤 것도 안정성을 높이는 데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