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44. 기적은 마음의 기적적인 상태로부터 일어난다. 이 마음 상태는 하나이기 때문에, 심지어 기적일꾼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모든 이에게 뻗어나간다. 이렇게 기적이 비개인적인 특성을 갖는 이유는, 속죄 자체가 하나로서 모든 창조물을 그 창조주와 연합하기 때문이다.
72 45. 기적은 그리스도를 내면에서 알아차리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였다는 표현이다. 그러면 마음은 은혜받은 상태가 되어, 자연스럽게 내면의 주인은 물론 바깥의 낯선 이도 은혜롭게 대하게 된다. 네가 낯선 이를 안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그는 너의 형제가 된다.
73 46. 기적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 기적은 네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때로는 네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세력들에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기적은 항상 너를 축복할 것이다.
74 네가 행하도록 요청받지 않은 기적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기적은 여전히 너의 은혜받은 상태의 표현이다. 하지만 기적의 행위 측면은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전체 계획을 완전히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심의 비개인적인 특성은 너의 은혜를 보장하지만, 은혜가 어디에 베풀어질 수 있는지 아는 위치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뿐이다.
75 47. 기적심은 기적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의미한다. 준비된 상태란 너의 지각을 항상 바르게 유지하여, 네가 항상 준비되어 있고, 용의가 있으며, 능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바로 "듣고, 배우고, 행하라."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너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배울 용의가 있어야 하며, 행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중 맨 마지막 요소만이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적의 적용 측면이기 때문이다. 기적심의 자발적인 측면인 나머지 두 요소는 정녕 너에게 달려있다.
76 48. 기적에 경외심으로 반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77 계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경험이므로,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경외심은 계시에 아주 정확히 들어맞는 것으로서, 계시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기적에 경외심을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외하는 상태는 숭배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낮은 순위의 존재가 더 위대한 존재 앞에 서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로지 한 영혼이 자신의 창조주 앞에 서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영혼들은 완벽한 창조물로서, 완벽함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현존 앞에서만 경외를 경험한다.
78 반면에 기적은 동등한 자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표시다. 동등한 자들은 서로를 경외할 수 없다. 경외는 동등하지 않음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외는 나에게 적절한 반응이 아니다. 형은 경험이 더 많기에 존경받을 자격이 있고, 지혜가 더 많기에 합당한 정도의 순종을 받을 자격도 있다. 그리고 형은 형제들 중 하나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스스로 헌신하고 있다면 헌신을 받을 자격도 있다. 오로지 나의 헌신만이 나에게 너의 헌신을 받을 자격을 부여해 준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네가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이제까지 우리 사이의 주된 차이점은, 나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를 진정한 거룩함의 상태에 있게 해준다. 하지만 네 안에서 그 상태는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79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한다."라는 구절은 성서에서 가장 오해받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이 말은, 시간 안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너와 어떤 식으로든 분리되어 있거나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실제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인용문은 사실 수평축이 아니라 수직축에서 고려할 때 더 의미가 있다. 수직축을 따라 고려할 때, 사람은 나의 아래에 있고 나는 하느님 아래에 있다. "올라가는" 과정에서, 나는 과연 더 높이 있다. 이런 이유는, 내가 없다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네가 건너기에는 너무 넓을 것이기 때문이다.
80 한편으로는 사람의 형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나는 그 간격을 다리를 놓아 메운다. 나는 형제들에게 헌신함으로써 온아들을 주관하게 되었지만, 내가 온아들을 공유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온아들을 완성할 수 있다. 이것은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말과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아버지가 더 크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구별된 부분들이 있다. (본래 이 말은 "한 종류다."이었다.) 성령은 계시를 가져다주는 자다. 계시는 나에 의해 간접적으로 고취된다. 나는 성령과 가까우며, 나의 형제들이 계시를 위해 준비되었는지 주의를 바짝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이 자신에게 끌어내릴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가지고 내려와 그들에게 줄 수 있다.
81 49. 성령은 최고의 소통 매체다. 기적은 이런 종류의 소통을 수반하지 않는다. 기적은 일시적인 소통 도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느님과의 본래 소통 형식으로 돌아가면, 기적의 필요성은 사라진다. 성령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소통을 매개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이르는 직통 채널을 계시를 위해 열어놓는다. 계시는 상호적이 아니다. 계시는 항상 하느님으로부터 사람에게 간다. 기적은 정녕 상호적이다. 기적은 동등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