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50. 기적은 시간의 필요성을 줄여주는 학습 도구다. 수직면이나 수평면상에서, 온아들의 모든 구성원의 진정한 동등성을 인식하려면 거의 끝없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기적은 수평적인 지각으로부터 수직적인 지각으로 갑작스럽게 전환을 일으키면서 간격을 하나 들여오는데, 기적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는 둘 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시간상으로 훨씬 더 앞선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83 이처럼 기적에는 기적이 차지하는 시간 간격을 불필요하게 만들어서 시간을 단축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하나의 기적에 걸리는 시간과 그 기적이 망라하는 시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기적은 수천 년이 걸렸을 수도 있는 배움을 대체한다. 기적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기적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의 완벽한 동등성과 거룩함에 대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적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다.
84 우리는 앞에서 기적이 시간을 폐지한다고 말했다. 기적은 시간을 붕괴시킴으로써 그 안의 특정 간격을 폐지하는 과정을 통해 그렇게 한다. 하지만 기적은 더 큰 시간의 연속 안에서 그렇게 한다. 기적은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시간 간격을 제정하는데, 이 간격은 통상적인 시간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오로지 이러한 의미에서만, 기적은 무시간적이다. 기적은 시간을 붕괴시킴으로써, 문자 그대로 시간을 절약한다. 마치 일광 절약 시간제처럼, 기적은 빛의 배분을 재조정한다.
85 51. 기적은 사람이 시간 통제를 위해 즉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오로지 계시만이 시간을 초월한다. 계시는 시간과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86 기적은 몸과 아주 비슷한 특성을 가졌다. 그것은 바로, 둘 다 그 자체가 필요 없는 상태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습 도구라는 점이다. 직접적인 소통이라는 영혼의 본래 상태에 도달하면, 몸과 기적은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몸 안에 있다고 믿는 동안은, 사랑 없는 표현 채널과 기적적인 표현 채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는 빈껍데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전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기다리고, 꾸물거리고, 자신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창조성을 거의 없어질 때까지 축소할 수 있으며, 심지어 발달 정지나 퇴행을 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창조성을 폐지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소통 매체를 파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잠재력은 파괴할 수 없다.
87 사람은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 사람은 단지 무엇을 창조할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기적심을 가진 자의 근본적인 결정은,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시간은 소모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모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기적일꾼은 시간 통제 요인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는 시간이 붕괴될 때마다 모든 사람이 시간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방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다.
88 지금은 동등성이 동질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인식할 때, 온아들에 대한 개별적인 기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속죄가 완성되었을 때, 하느님의 모든 아들은 모든 재능을 공유할 것이다. 하느님은 편파적이지 않으시다. 하느님의 모든 아이들은 그분의 전적인 사랑을 받으며, 그분의 모든 선물은 모든 이에게 똑같이 거저 주어진다. "네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는다면"이란 말은, 네가 하느님께 완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는 한, 아들이 아버지와 진정한 관계에 있을 때 갖는 진정한 권능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89 평화를 원하는 너는 완전한 용서를 통해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전에는 네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 적이 없었으며, 따라서 평화를 얻는 법을 말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평화를 배우기 원하고, 어떻게든 자신에게 평화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 한, 어떤 배움도 얻을 수 없다. 결핍이라는 개념은 하느님의 창조물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의 창조물들 안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이것은 본질적인 차이다. 필요는 정의상 결핍을 함축한다. 필요는 네가 지금과 어떻게든 다른 상태에 있다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수반한다.
90 "분리"(이것은 "타락"보다 더 나은 용어다) 이전에는, 아무것도 결핍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의미다. 그가 만약 자기 자신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필요를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리 이후 필요는 사람에게 행동할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근원이 되었다. 모든 행위는 본질적으로 필요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지만, 행위 자체는 신적인 속성이 아니다. 몸은 행위를 위한 장치다. 사람은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장치를 갖고 있다.
91 각 사람은 스스로 확립한 특정한 필요의 위계에 따라 행동한다. 그의 위계는 결국 그가 자신을 무엇이라고 지각하는지, 즉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다고 지각하는지에 달려있다. 하느님과 분리되었다는 느낌이야말로 사람이 실제로 교정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결핍이다. 이런 분리의 느낌은, 사람이 진리에 대한 자신의 지각을 왜곡함으로써 자신을 결핍되었다고 지각하지 않았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종류든 필요의 위계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는, 사람이 이런 근본적인 잘못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서로 다른 필요들을 갖는 여러 수준들로 이미 조각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통합되어 가면서 하나가 되며, 그에 따라 그의 필요들도 하나가 된다.